머리털 나고 동문 체육대회는 처음 왔다.
경란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을 확률은 단 1%도 안된다.
동주나 명신, 기수 정도만 이름을 알고 나머진 이름조차도 기억이 안난다.
점심 무렵 도착한 곳엔 열 명이 좀 넘는 친구들이 있다.,
정말 개어색.
이런. 여자애들도 잘 모르겠는데 남자애들까지.
그래도 찬찬히 얼굴을 보니 낯이 익는 것도 같다.
옆에 있던 영란인 심지어 우리 반이었고 내가 담임 심부름으로 동전 들고 은행갈 때 같이 가기도 했었다고.
그 옛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말도 안되는 일을 참 많이도 시켰었다.
어쨌든, 그건 나만 어렴풋이 기억하던 일이었는데 친구가 그걸 기억하고 있어 놀라웠다. 물론, 내 기억력을 또다시 탓할 수밖에 없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별달리 관심이 없었나보다.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었나.
난 그시절,그 탓을 가정환경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돌리고 있었는데. 내 딸을 보니  지극히 무관심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놀라운 아이는 명신이다. 이름을 연우로 개명했단다. 경란이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같이 놀았던 기억은 있지만 이 아이에 대해선 아는게 별로 없다. 뽀얗고 예쁘장했고 정말 조신했던 아이라 생각했는데 체육대회를 거의 뒤짚어놓는다. 간혹 툭툭 던지는 말이 재밌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잘노는 아이였나? 남들 시선을 전혀 게의치 않는 것도 전형적인 I인 나로서는 참 신기할 따름이다.
동주는 그 옛날 한동네에서 태어난 아주 예쁘장한 아이었는데 이름도 지금의 동주로 개명했고 너무 일찍 이사를  가서 친해질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한번도 같은 반을 안했으니 별 접점이 없다. 그래도 한동네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그저 반가울 따름.
하지만 그동안 추억을 공유한게 없다보니
별 할 얘기가 없다.
오지 말았어야 했나 싶다가도 이렇게나마 경란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6학년1반이었던 친구들이 셋이나 있었으니 그 또한 반갑고. 그래 담임 함자가 윤기순 선생님이었다.
촌스럽지만 앨범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나이를 먹어도 옛 얼굴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는게  언제봐도 신기하니 말이다.

아들은 모처럼 집에 온 연휴인데
떡볶이를 점심으로 시켜 혼자 때웠다.
둘째는 어제 서울 가서 1박2일로 실컷 놀고 온다고.
이마트에서 수입산 소고기를 사다 남편이 따온 송이랑 같이 차려줬다.
아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을 저녁으로 대신한다.


2023. 1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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