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낚시를 하고 온 남편이 미안했는지
일요일 오전 집에 오더니 오후에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한다.
"나 돈 없어."
드라이브를 시켜주면 커피는 으레 내가 사는 식이었는데
월급을 하루 앞두고 이젠 정말 카드로 빚지지 말자는 심산으로 나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사겠단다. 커피 하나 못사주겠냐고. ㅎㅎ.
아들을 앞세워 함께 나섰다.
조치원 정수장을 개조한 방랑싸롱이라는 데 가고 싶다고 했지만
조치원은 가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말에 행선지 보은으로 변경.
그럴거면 왜 나한테 물어보시나요? ㅎㅎ
보은 읍내 투썸 커피숍에 들러 드라이브 하는 걸로 이야기를 했는데...
길을 나서더니 속리산에 가기로 한다.
아들이 갑자기 김제 금산사를 얘기하는 바람에 거길 가긴 너무 멀고
속리산 법주사도 오랫동안 가보지 않은 터라 가기로 했다.
언제 갔더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 모시고 친정 식구들과 한번 와본 듯 하고.
그보다 더 선명하게 남는 기억은 아들 가졌을 때 배가 산만해서
순완언니랑 남편이랑 함께 왔을때. 절까진 들어가지 않았고 입구에 맨발로 걸을 수 있게 해놓은 곳을 걷다가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온 기억이 있다. 지금 보면 찻집이 절 코앞에 있었으니 절까진 걸어갔나 보다. 다향茶香
각자의 머리에 메모리된 기억을 조금씩 나누며 도착.
예전보다 활기차 보이는 법주사 입구. 사찰 입장료를 안받는다니 관광객이 더 늘었을까?
사람들로 제법 북적북적인다.
차를 주차하고(주차비 5000원. 주차비가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는 남편에게 그냥 주차하고 가자고!!)
천천히 사찰을 향해 오른다.
입구가 이렇게 좋았나?
기분 탓일까?
아님 오늘 유난히 청명한 하늘과 기분 좋은 바람 탓일까?
사찰도
모든 공사가 끝나고 평온하다.
위압감이 드는 금색의 대형 부처님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꽃을 한가득 피워, 무게가 느껴질 만큼의 꽃이 핀 보리수 나무 아래 망중한을 즐긴다.
바람도 좋고, 멀리 보이는 굽이굽이 능선도 부드럽다.
벌이 빼곡히 들어차 열심히 제 할일을 하고 있어 보리수 나무 아래는 어느때보다 조용하다.
같이 못 온 딸아이에게 미안하고 좀 아쉽다.
마음 속으로 올 해 꼭 원하는 대학 가자 외친다.
한참 앉아 있다가 내친 김에 산책. 세조길을 걷기로 한다.
그 전에 다향에서 연꽃빵?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고 숲길을 걷는다.
너무 좋다. 숲길따라 흐르는 시간이 이렇게 평안하고 행복할 수가.
중간에 저수지를 품고 있는 산책로도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문장대 정도의 높이까지 다녀온 듯한 등산객이 여기저기 벤치에 널브러져 낮잠을 즐긴다.
숲이 주는 최고의 선물 아닌가.
그래도 29~30도를 육박하는 날씨다 보니
내려올 때는 땀이 흥건히 고이기도 한다.
서둘러 가자. 저녁해야 함.
오는 길에 말티재 고개에서 꼬부랑길도 아들에게 시전하고
집으로 오는길.
컨디션이 좋았나 보다. 반나절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편과 아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
2024.06.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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