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온 부고문자.

고인의 이름을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다 

아, 선생님!

 

도서관 봉사자로 만났으니 10년 인연이다. 

도서관을 재오픈했을 때 선생님은 내 일처럼 기뻐했고

또 매주 금요일 오후에 그 자리에 계셨다. 

오전 봉사자 선생님도 같이 모셔왔고, 

책을 서가에 꽂는 일도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매 주 텃밭에서 가꾸는 야채를 챙겨오셨고, 한움큼씩 나의 품에 안겨주셨다. 

오전선생님은 빵이며 떡을 만들어오셔서 

매주 금요일은 어쩐지 동네 잔칫날인 듯...그렇게 도서관 앞에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는 게 즐거웠다. 

 

딸아이 진로며, 나의 일이며 고민됐을 땐 선생님을 따라

괴산의 작은 암자도 같이 찾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도 선생님 몸 속엔 작은 암덩어리가 자리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좀 피곤하다고 하셨는데... 그 땐 전혀 알 수 없었을 때. 

암자의 스님이 나를 보며 대뜸 유방암검사를 받으라고 했을 땐.... 몇 년 째 받지 못한 유방초음파를 걱정하며 

그저 내 얘기가 중심이 되어 선생님 차를 타고 돌아왔기도 했다. 

 

같은 췌장암으로 목요일 자원봉사 선생님을 보내고 

서로 마음 아파하다가 웬일인지 선생님 겨드랑이부터 등짝이 아프다고 했다. 

예전의 통증이 아닌듯 겁이 나서 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는데... 

그게 췌장암이었다. 

다행히 수술할 수 있다고 해서 선생님은 서울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셨다. 

하지만 생각보다 암크기가 커 췌장 전체를 드러내 항암 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서울 병원과 청주 병원을 오가며 투병을 했고, 작년 연말 쯤 도서관 봉사자 식사 때 선생님도 자리를 같이 해서 

얼마나 다행이고 기뻤는지.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을 줄 알았다. 

 

선생님과 통화를 언제 했더라. 올 초였나보다. 

그리고 

4월 즈음 우리병원 호스피스병동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차마 선생님을 찾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애써 감추고 싶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선생님을 뵈러 가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고 있던 날들.

이번주 화요일 봉사선생님을 만나면 같이 가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부고 문자를 받다니. 

 

호스피스 선생님과 조문을 잠깐 다녀왔다. 

영정 속 선생님은 너무 꽃같고 어여쁘다. 

65세. 여전히 아름다울 나이에  그렇게 힘들게 암투병을 하고 한없이 작아진 몸으로 생을 달리했다. 

 

선생님, 

많이 보고싶을 거에요. 

그 곳에선 아프지 말고, 남들 돕는것보단 선생님거 잘 챙기면서 즐겁게 지내시길 빌께요. 

 

 

2026.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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