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국화

딸의 마지막(아래쪽) 사랑니를 뽑고 집에 들어섰더니 주방이 환하다. 

아, 가을이구나. 

남편이 꽃을 가져다 놓았다. 

급하게 민원이 생겼다며 주차장으로 가는 남편을 뒤로 하고 들어왔더니

이런 갬성 넘치는 예쁜 짓을 하고 갔다. 

 

해마다 가을엔 남편이 꽃을 꺾어온다. 

수요일 출근 아침에 또 버섯 따러 가냐는 나의 퉁발에 그래도 꽃꺾어다 주는 남편이 좋지 않냐구. 

그래. 엄청 좋다. 남편의 감성은 오래오래 국화처럼 은은하다. 사랑도 뒤로 갈 수록 더 깊어지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자주 나에게 귀를 파달라고 하고, 등에 난 잡티를 짜달라고 하면

나는 으레 또 싫은 표정을 하며 잔소리를 한다. 그놈의 귀 남아 나지 않겠다고, 그놈의 등 짜놓으면 더 썽난다고. 

그래도 끊임없이 해달라고 한다. 이것이 내 몸이 피곤하고 주방일이 길어지면 정말 보통 짜증나고 귀찮은게 아니다. 

하지만 싫은 소리를 해대도 남편의 요구는 계속 이어진다. 

어쩔 땐 미안한지 돈 천원을 줄때도 있고, 사천원을 줄때도 있고, 운좋게 만원을 줄때도 있다.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풀어져서  옛다 하며 해준다. 

침팬지처럼 나이들수록 서로 이 잡아 주듯 그래야 한다고. ㅋㅋㅋ. 말이나 못하면. 

 

어쨌든, 

나의 가을은 남편의 꽃으로 시작하는 게 맞다. 

우린 예년보다 보일러도 늦게 틀기 시작했고, 조금 참을만하면 아예 틀지도 않고(작년까지만 해도 한번 틀기 시작하면 계속. 모두 추위를 많이 타는 편. 아니 그렇게 모두 적응한 것 같다.)

나름대로 좀 강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거실 창으로 바라본 썬큰의 단풍이 점점 진해지고 있으니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가보다. 

 

아들의 수능이 있는 올해는

제대로 가을을 느끼기엔 시간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가족에게서 내 사는 아파트에서 산책길에서 가을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아들은 

요즘 지구과학이 점수가 더 잘 나온다며 좀더 집중해서 풀어야겠다고 

문제집을 사달라는 톡을 보냈다. 

한 권은 자기 용돈으로 샀다며... 

23일 남은 수능. 

끝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수험생 아들을 응원한다. 

 

오늘 반차를 내서

엄마 요양원에 보낼 처방전을 다시 발급받고, 

온라인으로 여권신청을 하고 (분명히 올 3월에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직원샘이 여권용으로 파일을 다시 만들어 줌. 전문가의 솜씨. 감사감사^^)

시내가서 오래 줄을 서 쫄쫄이 호턱을 6개 사고

치과 다녀오는 길 동네 보세집에서 옷을 3개나 사고. 딸아이가 골라져 잘 샀다. 그래, 날 위해 이정도는 해야지. 암~~

 

2023.10.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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